02/10/2026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 네팔 바글룽 기후재난 현장 활동 보고서
오늘 카투만두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제야 지난 며칠 동안 네팔 현장에서 겪었던 일들을 차분히 돌아보며 소식을 전합니다.
무사히 돌아왔다는 감사와 함께, 같은 시간 같은 지역에서 폭우와 산사태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1. 네팔을 다시 찾은 이유
저는 지난 9월 22일 네팔에 도착했습니다.
본래 이번 방문은 수년 동안 지원해 온 바글룽(Baglung)의 Holy Child School을 방문하고, 매주 토요일 줌(Zoom)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해 온 학생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기 위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8월 26일 발생한 홍수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일정이 달라졌습니다. 긴급 모금을 진행했고, 기후재난 피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활동도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2. 카투만두 긴급구호 활동
9월 23일(수)
오전에는 네팔에서 오랫동안 사역해 오신 윤종수 목사님을 만나 그룹홈 두 곳을 방문했습니다. 오후에는 카투만두의 불교사원에 마련된 임시 보호시설을 찾아 피해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했습니다.
9월 24일(목)
비가 내리는 가운데 피난처 두 곳을 찾아 구호물품을 전달했습니다.
이후 Holy Child School 방문을 위해 포카라(Pokhara)로 이동했습니다. 당시 산간지역 이동 등에 대한 주의가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현지 상황을 확인하며 이동했습니다.
비와 안개로 항공편이 계속 지연되어 오후 비행기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출발했고, 어렵게 포카라에 도착했습니다.
3. 빗속에서 찾아간 바글룽
9월 25일(금)
Holy Child School 학생들에게 전달할 가방과 단체복을 준비하고 축구공, 배구공, 탁구공과 각종 문구류를 구입했습니다. 쌀과 라면 등 필요한 물품도 차량에 가득 실었습니다.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폭우라고 느낄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포카라를 출발해 저녁 무렵 바글룽의 Holy Child School에 도착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밖으로 뛰어나와 환호하며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긴 이동의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밤사이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학교가 있는 지역 주변으로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곳곳의 도로가 무너지고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과 다리도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대로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밀려왔습니다.
4. 고립 속에서 보낸 4박 5일
결국 우리는 바글룽에 4박 5일 동안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Holy Child School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기쁨과 슬픔, 사랑과 우정을 나눴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아이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9월 29일에는 한국어 도서관 개관식을 진행하고 염소나누기 사업도 이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염소를 전달해야 할 마을로 연결되는 도로가 산사태와 홍수로 파손되어 직접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현지 관계자들과 전화로 협의해 본격적인 전달 행사를 연기하고, 안전지역인 학교에서 아이들과 간단한 염소나누기 세리머니만 진행했습니다.
또한 샤히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Holy Child School 졸업생 가운데 염소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정과 연계하여 앞으로 필요한 염소를 지속적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학생과 주민의 자립을 함께 돕는 작은 출발이 될 것입니다.
5. 돌아오는 길에 확인한 기후재난의 상처
바글룽에서 포카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도로 곳곳이 크게 파손돼 있었고, 우리가 지나왔던 다리를 다시 이용하기 어려워 우회도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기후재난의 파괴력은 참담했습니다.
이후 포카라에 도착해 샤히 교장 선생님이 보내주신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우리가 머물렀던 바글룽과 간다키주(Gandaki Province)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현지 정부와 언론의 당시 집계에 따르면 간다키주에서는 폭우와 홍수·산사태로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으며 2명이 실종됐습니다.
주택 179채가 완전히 파괴되고 수백 채가 파손되거나 위험에 놓였으며, 512가구 1,684명이 대피하거나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바글룽 일대에서도 산사태가 주택을 덮치며 한 가족이 희생되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도로와 교량뿐 아니라 전력·통신시설도 피해를 입어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와 전화, 인터넷 이용에도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인근 몌그디(Myagdi)와 파르바트(Parbat) 지역에서도 산사태와 강 범람으로 인명과 주택, 도로 등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바로 그 시간, 가까운 지역에서 주민들이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면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6.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해외지원이나 구호활동을 넘어섰습니다.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가 가난하고 취약한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명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는지 현장에서 목격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겼으며,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여러 곳의 도로가 파손된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안전한 우회도로가 열렸고 긴 기다림과 위험을 지나 오늘 카투만두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에 감사하는 것만으로 이번 여정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간 그곳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 집과 생업을 잃은 주민들, 그리고 기후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기후난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안전한 카투만두에 머물며 이번 재난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유가족,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시작된 긴급구호와 Holy Child School 지원, 한국어 교육, 한국어 도서관, 염소나누기 사업이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네팔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삶을 다시 일으키는 자립과 연대의 길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네팔의 아픔과 기후난민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구호와 복구의 길 위에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함께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26년 10월 2일
네팔 카투만두에서
이준모 목사